시 · 좋은글

고목 / 복 효근

초로기2 2023. 8. 26. 20:43

 

 

 

 

 

 

고목 

 

 

복 효근

 

 

 

 

오동은 고목이 되어갈수록
제 중심에 구멍을 기른다


오동뿐이랴 느티나무가 그렇고 

대나무가 그렇다


잘 마른 텅 빈 육신의 나무는
바람을 제 구멍에 연주한다


어느 누구의 삶인들 아니랴
수많은 구멍으로 빚어진 삶의 빈 고목에


어느 날
지나는 바람 한줄기에서 거문고 소리 들리리니


거문고 소리가 아닌들 또 어떠랴
고뇌의 피리새라도 한 마리 세 들어 새끼칠 수 있다면


텅 빈 누구의 삶인들 향기롭지 않으랴
바람은 쉼없이 상처를 후비고 백금칼날처럼


햇볕 뜨거워 이승의 한낮은
육탈하기 좋은 때

잘 마른 구멍 하나 가꾸고 싶다