시 · 좋은글
가을 편지 / 문 정희
초로기2
2023. 11. 11. 20:41
가을 편지
문정희
그대 떠나간 후
나의 가을은
조금만 건드려도
우수수 몸을 떨었다
못다한 말
못다한 노래
까아만 씨앗으로 가슴에 담고
우리의 사랑이 지고 있었으므로
머잖아 한 잎 두 잎
아픔은 사라지고
기억만 남아 벼 베고 난 빈 들녘
고즈넉한 볏단처럼 놓이리라
사랑한다는 것은
조용히 물이 드는 것
아무에게도 말 못하고
홀로 찬바람에 흔들리는 것이지
그리고 이 세상 끝날 때
가장 깊은 살 속에
담아가는 것이지
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
조금만 건드려도
우수수 옷을 벗었다
슬프고 앙상한
뼈만 남았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