
느다시 언덕에서
이형권
먼 훗날의 이야기처럼
그대를 사랑하는 마음이 희미해진다면
수크렁꽃 피는 느다시 언덕에서
나는 한 줌 바람이 되고 싶습니다.
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지만
우리는 해와 달처럼
빛나던 연인이었으므로
서러워하지 않겠습니다
세월 뒤에 남는 것은 이별의 그림자
추억만이 남아서
쓸쓸한 바람소리가 되었을지라도
후회하거나 슬퍼하지 않겠습니다.
늦도록 지는 해를 바라볼 수 있는
느다시 언덕에 서서
결초의 마음을 간직한 수크렁꽃처럼
초원의 노래가 되고 싶습니다.
노을빛에 물들고
초저녁별 돋아나는 하늘빛에 물들고
그대가 떨구고 간 청빛 눈물에 물들어서
고요히 흩어지는 어둠이고 싶습니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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