허구한 날 지나간 날 

 

 

강연호


아무도 오지 않는다
허구한 날 내 마음의 공터에는


혼자 놀다 심심해진 햇살
곰곰한 생각에 지쳐 그늘 키우고


기다리는 일 많으면 사람 버리기 십상이라며
귓바퀴에 잠시 머물던 바람결 총총히 사라진다.

저 햇살 저 바람도 저녁이면 돌아갈 집이 있는가
고개 갸우뚱하면 침착하게 낙법을 연습하던 나뭇잎 몇 장


내일 또 오마는 약속처럼 어깨에 얹힌다
삶이란 이런 거다


건너편 아파트 베란다에 널렸다 걷히면서
다시 더러워질 결심을 바투 여미는 흰 빨래의 반짝임 같은

세월아, 갈기갈기 찢기고 늘어진
하품에 지쳐 나는 너에게 줄 그리움이 없는데


너는 손 벌리고 자꾸만 손 벌리고
사진틀 속에 흑백으로 갇힌 날들이 파닥거린다


더러 지나간 날들이 예쁘게 이마 짚어주지만
아무리 기억의 초인종을 신나게 눌러도


그때, 그 들길, 첫 입맞춤
풀잎 풀잎 풀잎, 서걱서걱 서투르다며 흉보던 날들은


이제 더 이상 여기에 살지 않는다
텅 빈 우편함에는 수취인 불명의 먼지만 쌓여갈 뿐

내 한 번도 같이 놀자고 한 적 없는
세월아, 내가 언제 숨바꼭질 하자 했니?


그것도 모자라서 세월아
왜 나만 술래 되어야 하니?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'시 · 좋은글' 카테고리의 다른 글

가을의 빛 / 이형권  (6) 2026.10.11
가을은 짧아서 / 박노해  (9) 2026.10.07
바람에게 / 이해인  (8) 2026.10.06
시월은 또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릴것이다 / 이기철  (11) 2026.10.05
꽃 / 김춘수  (9) 2026.10.03

+ Recent posts