잠들면 다 꿈이고

 

 

박 이화 

 

 

담장 밖을 넘나드는 넝쿨 떄문에

울안에 심지 말라는 능소화가

가슴에 커다란 주홍 글씨를 달고서는

해마다 아프게 꽃을 피우고 있다

 

지을 수 없는  낙인처럼

저 주홍의 꽃가루에

눈멀 수 있다는

흉흉한 소문도 있지만

그렇게 눈멀어서인지

사랑에 눈멀어서인지

 

날벌레 한 마리

그 속에 파르르 졸고 있다

 

잠들면 다 꿈이고

꿈은 언젠간 꺠는 것이어서

 

누구라도 맹목의 사랑 앞에선

꿈꾸듯 눈이 머는지

 

꺠어나기 전 까지

저 하루살이도 꿈에선 꽃일 터

 

그러나 꿈은 길어도 하룻밤

그 바람 앞의 단잠 꺠우지 않으려

 

꽃도 향도 모르는 척

담장 밖을 서성이는데

 

누구

꿈과 사랑의 차이를 아시는지

 

꿈은 꿈인 줄 모른 채 울다 꺠어나도

사랑은 아무리 흔들어도 꺠어날수 없는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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