마지막 첫눈 

 

정호승   

            

 

마지막 첫눈을 기다린다

플라타너스 한그루 옷을 벗고 서 있는

커피전문점 흐린 창가에 앉아

모든 기다림을 기다리지 않기로 하고

마지막 첫눈이 오기를 기다린다

 

 

첫눈은 내리지 않는다

이제 기다린다고 해서 첫눈은 내리지 않는다

내가 첫눈이 되어 내려야 한다

첫눈으로 내려야 할 가난한 사람들이

배고파 걸어가는 저 거리에

내가 첫눈이 되어 펑펑 쏟아져야 한다

 

 

오늘도 서울역까지 혼자 걸었다

돌아오는 길에 명동성당의 종소리가 들렸다

땅에는 저녁별들이 눈물이 되어 굴러다니고

내가 소유한 모든 것을 버릴 수 없어

나는 오늘도 그의 제자가 될 수 없었다

 

 

별들이 첫눈으로 내린다

가장 빛날 때가 가장 침묵할 때이던 별들이

드디어 마지막 첫눈으로 내린다

커피전문점 어두운 창가에 앉아

다시 찾아올 성지를 기다리며

 

 

첫눈으로 내리는 흰 별들을 바라본다

 

 

 

 

 

 

'시 · 좋은글' 카테고리의 다른 글

밭머리에 서서 / 박 용래  (13) 2023.01.22
그리움 / 나 태주  (16) 2023.01.19
겨울바다 / 이 해인  (11) 2023.01.16
갈매기 / 용 혜원  (12) 2023.01.14
여백 / 도 종환  (7) 2023.01.12

+ Recent posts