물안개/류시화
세월이 이따금 나에게 묻는다.
사랑은 그후 어떻게 되었느냐고
물안개처럼
몇 겁의 인연이라는 것도
아주 쉽게 부서지더라.
세월은 온전하게 주위의 풍경을
단단하게 부여잡고 있었다.
섭섭하게도 변해버린 것은
내 주위에 없었다.
두리번 거리는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.
사람들은 흘렀고
여전히 나는
그 긴 벤취에 그대로였다.
이제 세월이 나에게 묻는다.
그럼 너는 무엇이 변했느냐!
세상의 모든 길은
당신 앞에서 시작하며
오직 당신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.
당신이 지금 서 있는 이 곳이
당신의 새로운 주소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