겨울 궁남지

 

복 효근

 

 

 

 

 

 

저 수 천 평 연밭에 연꽃은 자취도 없고

허리가 휘어지거나 무릎이 꺾인 꽃대궁

마른 꽃대궁이 마이크 같다

한 바탕 유세를 부린다

 

나도 한 때 꽃 피운 적 있노라고

홍련 백련 꽃이었던 적 있었노라고,

이제는 구멍 숭숭 벌집 모양

그야말로 벌집이 되어버린 자궁만이

자랑처럼 남아있다

 

그래, 자궁이지 궁이고 말고

구멍마다 칸칸이 연의 씨앗이 담겨 있어

씨앗 하나에 우주가 담겨 있다면 믿겠나

저 씨앗을 연밥이라 부르느니

 

모름지기 수 천 평 연밭을 일구고 먹여 살린

밥이라 하는 것이 저 궁에서 나왔느니

진흙땅 젖은 늪 저승이라도 두렵지 않던 홍련

백련 왼갖 잡련 들이

한 빛깔로 저무는 적멸보궁

무슨 고요가 이리도 소란스럽다

 

겨울 궁남지*엔

신경외과 대기실에 모인 어머니들처럼

다산多産의 무용담 왁자하다

유세 부릴 만하다

 

 

 

 

 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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