큰눈 내리는 날
곽재구
한때
나는 눈이
사이비 혁명의 숨결을
닮았노라 생각했었다
긴긴 사랑의
한숨소리도 아니고
마디마디 뼈 시린
고통의 눈빛도 아니고
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이 빛나는
백합의 골짜기는 더더욱 아니고
그럭저럭
상심한 강물을 따라 흐르다
상심한 강물 속에 저문 육신을 눕히는
하, 이 세상의
하찮은 그리움의 부스럼딱지
이거니 했다
그러했거니
동무여
오늘밤은 네가 관장하는
이 세상 넓은 과수원 위에
이 세상 사람들이 채 알지 못하는
그리운 과일들의 이름을
새록새록 새겨다오
더 따뜻하게
더 순수하게
더 믿음직하게
온 세상을 뒤덮는
새하얀 약속의 불기둥을 보여다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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