겨울 숲에서
안 도현
참나무 자작나무 마른 잎사귀를 밟으며
첫눈이 내립니다
첫눈이 내리는 날은
왠지 그대가 올 것 같아
나는 겨울 숲에 한 그루 나무로 서서
그대를 기다립니다
그대를 알고부터
나는 기다리는 일이 즐거워졌습니다
이 계절에서 저 계절을 기다리는
헐벗은 나무들도 모두
그래서 사랑에 빠진 것이겠지요
눈이 쌓일수록
가지고 있던 많은 것을
송두리째 버리는 숲을 보며
그대를 사랑하는 동안
내 마음 속 헛된 욕심이며
보잘것 없는 지식들을
내 삶의 골짜기에 퍼붓기 시작하는
저 숫눈발 속에다
하나 남김 없이 묻어야 함을 압니다
비록 가난하지만
따뜻한 아궁이가 있는 사람들의 마을로
내가 돌아가야 할
길도 지워지고
기다림으로 부르르 몸 떠는
빈 겨울나무들의 숲으로
그대 올 때는
천지사방 가슴 벅찬
폭설로 오십시오
그때가지 내 할 일은
머리끝까지 눈을 뒤집어쓰고
눈사람되어 서 있는 일입니다.
'시 · 좋은글' 카테고리의 다른 글
겨울편지 / 이 해인 (9) | 2025.01.16 |
---|---|
큰 눈내리는 날 / 곽 재구 (12) | 2025.01.15 |
여행자 에게 / 나 태주 (10) | 2025.01.12 |
청춘의 불꽃 / 남 정림 (19) | 2025.01.08 |
보고 싶은 사람 / 문 정희 (13) | 2025.01.06 |