꽃나무 아래서의 약속 

 

 

이기철

 

 

 

꽃나무 아래서의 약속은 쉬이 잊는 게 좋다

 

저 꽃잎으로 문질러도 낫지 않는 병 있으니

 

허공을 꽉 채운 색色들이 날아갈 곳은 어디?

 

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옷 벗는 시간 속으로

 

꽃이파리는 진다

 

길을 몰라 분분한 저 꽃이파리의 알몸

 

져버려도 죄 되지 않는 약속

 

어느 가슴이 저 천 개의 약속을 다 지킬 수 있는가

 

온몸이 입술인 꽃잎과의 약속을,

 

그 아래서는 아무도 고통스럽지 않은 저 고통

 

저 입술을 받아두었다가 가장 어둔 날 저녁 불 켜면 좋겠다

 

난생 처음의 외출복을 입고

 

햇살 아래 부끄러이 드러낸 알몸을 보면 내 살이 아프다

 

지나간 백 년을 다 전하느라 입술이 부푼 꽃잎

 

꽃나무와의 약속은 잊힐수록 아름답다.

 

 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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