11월에
정 채봉
만추면서 겨울로 들어서는 길목,
화장 지우는 여인처럼
이파리를 떨구어 버리는 나무들 사이로 차가운 안개가 흐르고
텅 비어버린 들녘의 외딴 섬 같은 푸른 채전에 하얀 서리가 덮이면
전선줄을 울리는 바람 소리 또한 영명하게 들려오는 것이어서
정말이지 나는 11월을 좋아하였다.
삶에 회의가 일어 고개를 숙이고 걷다가도
찬바람이 겨드랑이께를 파고들면
' 그래 살아 보자, 하고 입술을 베어 물게 하는 달도 이달이고
가스 불꽃이 바람 부는대로 일렁이는 포장마차에 앉아서
소주의 싸아한 진맛을 알게 하는 달도 이달이며,
어쩌다 철 이른 첫눈이라도 오게 되면
축복처럼 느껴져서 얼마나 감사해한 달인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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