
이월
도종환
입춘이 지나갔다는 걸
나무들은 몸으로 안다
한문을 배웠을리 없는 산수유나무 어린 것들이
솟을대문 옆에서 입춘을 읽는다
이월이 좋은 것은
기다림이 나뭇가지를
출렁이게 하기 때문이다
태백산맥 동쪽에는
허벅지까지 습설(濕雪)이 내려 쌓여
오르고 내리는 길 모두가 막혔다는데
길가의 나무들은
크게 동요하지 않는 눈치다
삼월도 안심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
이월은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해주는
무엇이 있다
녹았던 물을 다시 살얼음으로
바꾸는 밤바람이
위세를 부리며 몰려다니지만
이월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
지나온 내 생애도
찬바람 몰아치는 날 많았는데
그때마다 볼이 빨갛게 언 나를
나는 순간순간 이월로 옮겨다 놓곤 했다
이월이 나를 제 옆에 있게 해주면
위안이 되었다
오늘 아침에도 이월이
슬그머니 옆에 와 내가
바라보는 들판의 푸릇푸릇한
흔적을 함께 보고 있다

'시 · 좋은글' 카테고리의 다른 글
| 썰물 (6) | 2026.02.09 |
|---|---|
| 겨울 나무/ 도종환 (14) | 2026.02.08 |
| 동백꽃 유서 (7) | 2026.02.06 |
| 입춘 이면 / 박노해 (10) | 2026.02.05 |
| 그래, 인생은 단 한번의 추억여행이야 / 김정한 (13) | 2026.02.02 |
