겨울나무 

 

도종환

 

 

된바람에 모질게 시달리다

눈발과 함께 바람이 산을 넘어간 뒤

천천히 숨 고르고 있는 나무를 올려다보자

겨울나무는 나를 내려보며 말했다

바람을 이기려는 건 무모한 일이죠

바람이 사나울 땐 바람에 몸을 맡겨요

꽃 피는 시절에는 허영에 들뜨지 않고

푸른 잎 무성할 땐 겉넘지 않고

열매가 찾아올 땐 자신에게 충실할 줄 알면

찬 바람 몰아칠 때 비굴하지 않다고

가지에 쌓인 눈을 털어내며 나무가 일러주었다

황홀하게 물든 잎들 허공에 날려 보낼 때나

폭설이 몰아쳐 온몸 오그라드는 날에도

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게 실력이라고

폭우 쏟아질 때부터 눈발 날릴 때까지

하루하루를 견딜 줄 아는 힘이 실력이라고

그걸 감당할 수 있어야

큰 나무 되는 거라고

겨울나무는 침묵의 장엄한 언어로 말을 건넨다

웅웅거리던 신음 소리도 멎고

산발치에서 산마루까지 고요해졌다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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